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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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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땅을 사고팔때(땅소유)의 하나님의 뜻....
계산교회성도입니다.
목사님의 설교 잘들었습니다...
아시겠지만 한국이 요 몇년 사이에 빈익빈부익부현상이 심해 졌습니다..
여러가지 원인을 말하지만 한가지 이유는 땅의 문제입니다...

성경에서도 희년이라는 제도로 하나님의 뜻이 나타나 있습니다...

그곳 선교지에서 땅을 사서 여러가지 사역을 하시는 모습 보기 좋았습니다...

하지만 원하든 원하지 않든 땅투기나 땅독점이 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선교전략 중 하나로 그 지역의 땅의 실태를 바로잡는 계기가 되기를 바랍니다.. 이것도 그 땅을 향한 하나님 뜻-선교-입니다...

'성토모(성경적 토지정의를 위한 모임)'에서 희년의 현재적인 실현에 대한 좋은 조언과 자료를 얻을수 있을 것입니다.
성토모 홈페이지: www.land.kimc.net

아래는,
인터넷에서 찾은 희년에 대한 글입니다..


희년 禧年, year of jubilee  

   요약
이스라엘에서 50년마다 공포된 안식의 해.


  본문

수양의 뿔 또는 나팔이라는 뜻을 지니고 있다. 구약성서 《레위기》 25장에 따르면, 희년은 50년마다 돌아온다고 기록되어 있다. “너는 일곱 안식년을 계수할찌니 이는 칠 년이 일곱 번인즉 안식년 일곱 번 동안 곧 사십 구년이라 칠월 십일은 속죄일이니 너는 나팔 소리를 내되 전국에서 크게 불찌며 제 오십 년을 거룩하게 하여 전국 거민에게 자유를 공포하라 이 해는 너희에게 희년이니 너희는 각각 그 기업으로 돌아가며 각각 그 가족에게로 돌아갈찌며(레위기 25:8-10)”라고 나타나 있다. 희년은 “여호와의 은혜의 해”(이사야 61:2) 또는 “자유의 해”(에스겔 46:17)로 불렸다.

이 해에는 누구에게 소속되었던지 노예로 있던 모든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자유가 선포되었다. 율법에는 희년이 가까워질수록 노예의 값을 다르게 책정하였다. 《레위기》 25장 39~42절에 “네 동족이 빈한하게 되어 네게 몸이 팔리거든 너는 그를 종으로 부리지 말고 품군이나 우거하는 자같이 너와 함께 있게 하여 희년까지 너를 섬기게 하라 그 때에는 그와 그 자녀가 함께 네게서 떠나 그 본족에게로 돌아가서 조상의 기업을 회복하리라 그들은 내가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낸 바 나의 품군인즉 종으로 팔리지 말 것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그리고 가난 때문에 조상의 소유를 팔아야 할 사람들에게 그것을 돌려주기도 하였다. 땅값의 경우에도 희년이 가까움에 따라 그 값이 달라졌으며, 땅을 쉬게 하였다. 땅이 이전의 안식년에 묵혔을지라도 이 해에 묵히도록 하였다.

희년의 비유적 의미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사역을 뜻한다. 《누가복음》 4장에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라고 나타나 있다. 그리고 피조물의 해방을 뜻하는 의미도 있는데, 《로마서》 8장에는 “그 바라는 것은 피조물도 썩어짐의 종노릇 한데서 해방되어 하나님의 자녀들의 영광의 자유에 이르는 것이니라”고 기록되어 있다.
  
희년법은 무엇이며 그것의 현대적 의미는 무엇인가?
구약성서의 고난신학, 김이곤

서론

이스라엘에는 인간 사회로서는 결코 지켜지기 어려운 한 법 즉 레위기 25장 8-17, 23-55절에 나타나는 희년법이 그것이다. 희년법은 분명 신학적 성격을 띄고 있는 것으로 고대 중동 근동의 어떤 관습법과는 다른 전혀 그 유례를 찾을 수 없는 특별한 성격을 띤 법이다.

Ⅰ. 희년법의 내용과 그 성격

레위기 25장 8-17, 23-55절에 나타난 희년법의 구성은 다음과 같다.

1) 희년 제도를 설명하는 전문(前文/preamble, 8-17)

2) 토지 문제(23-28)

3) 가옥 문제(29-31)

4) 레위인의 가옥과 토지 문제(32-34)

5) 이식 없는 대부 문제(35-38)

6) 노예된 자의 해방(39-55)

1)전문의 구성을 보면 희년의 정학한 때를 계산하는 방법과 기본 성격을 정의해 주고 희년에 취할 행동을 설명하고 있다. 희년은 이스라엘이 가나안에 들어간 그 때를 기점으로 하여 일곱 번째 맞는 안식년이 지난 그 다음해인 “제 오십 년째의 해”를 가리키고 있다. 그날을 “대 사면의 날”, “기쁜 함성의 나팔”로 “대사면”을 선포하는 날이다. 이날이 지닌 대사면의 성격과 이유는 다음과 같다.

A.성격

(1) 그 땅에 거주하는 모든 사람에게 “해방”을 선포하라

(2) 그 땅의 모든 사람들은 다 각자 자기의 “유산의 땅”(아훗짜)으로 “돌아가라”(터슈바).

B.이유

(1) 너희의 형제(동족)를 억압하지(억울하게 하지) 말라.

(2) 너희의 하나님을 두려워 할 줄 알아라.

우리는 위에서 “해방”이란 단어와 “돌아가라”하는 단어의 평행을 보여주고 있음을 알 수있다. 여기서 말하는 “해방”은 단지 경제적 어려움으로 인해 노예로 전락하여 전인적 소외를 당하던 형제(동족)가 그의 모든 인간 자신의 회복과 잃었던 자신의 기본적인 경제권 즉 야훼 하나님이 주신 토지(아훗짜)의 ‘되찾음’을 말한다. 이것은 “원상복귀”를 하여 처음부터 새롭게 인생을 다시 시작하라는 명령의 의미를 갖는다고 하겠다. 그렇기 때문에 “타슈부”(돌아가라)라는 단어가 무려 세 번(25장10,13a,b)이나 반복되고 있다.

그러나 이런 원점으로의 복귀에는 반드시 뚜렷한 목적이 있다. 그것은 형제(동족)을 “억울하게 하지 말라” 즉 형제 사이의 경제적 억압과 경제적 폭력을 제거하려는 데 목적이 있다. 그렇게 하지 않는 것은 하나님을 “두려워 할 줄 모르는 행위”가 된다.

그리고 토지의 자동적 원상 환원의 문제(23-28절)인데 이스라엘에게 있어서 ‘땅’은 신명기 26장 9절과 여호수아 21장 43절이 말하듯이 야훼가 준 것이고 이스라엘은 야훼의 땅에 몸붙여 사는 식객에 불과하므로 땅을 매매 할 수는 없다. 그럼에도 매매의 행위가 나타나는 것은 땅에 대한 실질적인 매매가 아닌 땅의 소출물의 매매인 것이다. 그러므로 희년법의 의도로는 생업의 기초인 토지 즉 “아훗짜”를 읽고 가난하게 되는 데에서 해방 받도록 하는 것, “아훗짜”로 돌아가 새출발을 하게 하는데 있다.

그다음 “가옥”을 무르는 문제(29-31절)에 있어서 기본적 방법은 ‘땅’의 문제와 같은데 성(城)의 안과 밖의 가옥에 대한 구별에서 성밖의 가옥만이 희년법 적용을 받고 성안의 가옥은 1년 이내에 무르지 못하면 영원히 무르지 못하도록 되어 있었다. 이것은 아마도 가나안 도시법과 이스라에의 토지법 사이의 대조라는 사회적 배경을 갖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도시 안에 옛 가나안 가옥들도 레위인의 소유로 되어 있는 가옥들에는 희년법을 특례로 적용했다. 그것은 가나안 입주 당시 레위인은 ‘땅’이 아닌 도시를 분배 받았기 때문이다.

“이자 없는 대부”에 관한 규정은 주로 동족끼리 서로 금전으로 도와 줄 때는 이자나 장리를 생각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지불 능력이 없는 채무자가 이자의 증식으로 더 가난해지고 노예화되기 때문이다. 이것은 곧 그들의 구원(久遠)한 희망인 평등사회 이념도 깨어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몸의 해방에 관한 것, 즉 노예 된 자의 사면 또는 해방의 문제이다. 이스라엘인인 형제와 동족 사이에는 본질적으로 “종”이라는 것이 있을 수 없다는 사상이다. 왜냐하면 그들(노예)은 어디까지나 “가난하게 된 형제”일뿐이고 그들 역시 애굽으로부터 인도된 “야훼의 종들”일 뿐 인간의 종은 아니라는 것이다. 이러한 노예의 사면은 다름 아닌 “하나님을 두려워할 줄 아는 삶”이라는 것을 또다시 강조하는 것이다. 그러나 출애굽기 21장 1-11절과 신명기 15장 12-18절의 희년법과 안식년 범규와의 상이점이 있다. 안식년 법규는 노예가 자신의 해방을 원치 않으면 그리고 결혼했을 경우 혼자만 해방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반면 희년법은 완전한 원상 복귀를 요구하고 있으며 혼자가 아닌 온 가족이 완전히 사면되는 법이다.


Ⅱ. 희년법의 역사성과 기원

희년법은 실제로 시행된 법인가? 아니면 이상주의적 사상일 뿐인가? 하는 물음에 그것은 환상적인 종교 이론으로 이해되기 쉽다. 그러나 희년법은 결코 서방 성서신학자들이 생각했던 것처럼 후대의 순수 종교 이론가들이 사변을 농필(弄筆)한 유토피아적 공론은 아니다. 그 근거는 1) 제자문서(P)의 슬롭핫의 딸들에 대한 설화에서 찾을 수 있다. 슬롭핫의 딸들은 자기네 지파 남자들 외에는 결혼을 하지 못했다. 그것은 그녀들의 유산이 다른 지파로 넘어가기 때문이다. 이것은 부당한 자산 증식으로 지파간 경제적 불균형을 가져오기 때문에 그러하다. 그밖에도 레위기 27장 16-25절에 성소에 토지를 헌납하면 희년이 되어도 돌려 받을 수 없다는 신의 금기(herem:ban)이 있다. 2) 예레미야 34장 8-22절을 통해 보면 시드키야 왕 때 희년과 안신년에 선포되던 해방과 자유가 시행되었다. 하지만 곧 상전(上典)들의 이기적인 변심으로 취소된 경우를 볼 수 있다. 실로 희년버은 시행되기 어려운 법임을 말해주는 것이다. 3) 희년에 선포된 해방 즉 “떠롤”이란 히브리어와 아카드어 “안두라루”(anduraru)라는 말 사이의 유사성을 지적할 수 있다. “안두라루”란 말은 “빛의 사면”,“노예의 해방”등으로 쓰이는 말로 함무라비 법전에 언급되어 있다. 4) 희년 사상의 실재와 그 법의 시행에 대한 요구가 있었던 실증은 예언자들의 정신 세계를 통해 알 수 있다. 아모스의 예언자적 비판 속에서(아모스 2:6-8, 8:4-6) 토지매매, 인신매매를 금하려고 하는 희년 정신을 반영되어 있다. 또한 미가의 메시아적 평화시대에 관한 비전(미가 4:3-4)속에는 희년 선포 때의 한 상황을 반영하고 있다. 더욱더 구체적인 희년 사상이 반영된 것은 제3이사야(이사야61:1b-2)에서 발견된다.

이와 같은 희년 사상이 과연 이스라엘사에서는 언제 제정되었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은 두 가지이다. 후대의 것이란 것과 고대이 것이란 것이다. 후대의 것이란 주장은 50년간의 시간 단위 계산법이 후대의 문서 즉 포로기 이후의 성서에서만 나타난다는 점과 희년법이 포로후기의 제사문서에서 발견 됐다는 점에 기초하고, 고대의 것이란 주장은 희년법이 고대 근친 속량법과 밀접한 관계를 갖는다는 점과 성(城) 내외(內外) 가옥 구분과 “요벨”(yovel)이란 말이 포로 후기 시대에는 잘 알려지지 않았다는 점과 성서의 고대 자료(J,E)에 나타난 안식년법과 긴밀한 결부성 등을 기초하고 있다.

그러나 우선적으로 알아야 할 것은 출애굽 이후 과거 고난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 꿈꾸어온 경제 평등 사회에 대한 비전이 희년법에 반영되었다는 것과, 희년법 생서의 요인이 초기 이스라엘이 가졌던 평등사회가 가나안 문화 속에서 왕조시대로 접어들 때 붕괴되면서 폭 넓은 희년법을 생성케 했다. 이런 맥락에서 희년법은 왕조 초엽에 구상되어 왕조 말기 므느쎄오아, 시드키아 왕에 이르는 역사의 후기에 법제화 되었다.


Ⅲ. 희년법의 신학이 지닌 현대적 의미

희년법을 주도하고 있는 신학은 신명기 26장 5b-9절에서와 같이 출애굽기 신하과 땅 정착의 신학을 종합한 것이라 하겠다. 이것은 앞에서 보았듯이 “야훼의 종”인 히브리인들간의 노예화는 할 수 없으며, “아훗짜”는 균등하게 분배된 생활의 기본 자금이었다는 것을 나타내는 것이다. 따라서 희년 사상에 나타난 그 핵심되는 신학은 “아훗짜”는 모두 야훼의 것이라는 “모노 야위즘”(mono-Yahwism)이라고 하겠다. 이것은 초기 이스라엘이 가졌던 혁신적이고도 비철학적인 “실천적인 유일신론”(practical monotheism)이다.

이런 희년법은 “파괴적 성격의 공산주의”(destructive communism)를 변호하거나 게으름에 프리미엄을 더해주는 것도 아니다. 이것이 현대 산업사회에 주는 의미는 개인의 기본 자산을 절대적으로 보호한다는 의미와 개인의 자산을 무한대로 확대함으로 생겨나는 모순, 즉 부와 권력의 개인 집중화로 인한 계급사회의 항구화(恒久化)를 막아 이상적 평등사회를 이룩하려는 히브리인 공동체 사회의 신앙적 의를 천명하는 데 있다.

희년법의 법 조항들 속에 나타나고 있는 “무를(속량할) 때의 돈 계산법”은 어디까지 “노동력만” 즉 땅보다는 땅의 소출만이, 노예의 몸보다는 그 노예의 노동력만이 매매되고 있는 것을 발견한다. 이것은 자산은 그냥 두어 “쉬게 하고” 노동력만을 매매의 형식으로 전화한다는 것으로 사람이 평등하게 노동함으로 사회 전반을 밝게 활성화한다는 고무적인 의미와 동시에 인간의 기본 자산이 병드는 것(아훗짜가 병드는 것), 땅이 병들고 인간의 육신이 병드는 것을 막아 이 산업 사회의 희망적 미래도 역시 보장해 두자는 종말론적 신앙의 의미도 갖는다.

그러나 이와같은 대 원상복귀는 복잡한 인간 산업사회의 구조상 실천 불가능한 일 같다. 적어도 그것의 문자적 실천은 불가능한 것임이 분명하다. 하지만 이 희년법의 사상과 정신은 현대적 언어로 재 표현되어야 하고 또 재 표현될 수 있다.

1) 희년 정신의 가장 중요한 강조점은 “기본 자산”(아훗짜)의 신성성에 대한 강조이다. 즉 토지, 가옥, 몸은 하나님이 위로 부터 주신 은사요 거룩한 선물이다. 그러므로 그것은 “타부”(taboo/herem)이며 매매할 수 없다. 그러므로 부동산 투기와 같은 기본 자산의 투기는 죄악이다.

2) 희년법의 중심적인 요구사항인 “돌아가라”(터슈바)는 말은 자산의 주기적 원상 환원, 즉 기본 자산의 주기적 재분배이다. 원상으로 돌아가는 것은 “쉼”을 통한 “재출발”을 가리키며, “휴식”, “노동”, “기회의 재분배” 사이의 긴밀한 상관 관계성을 지시하고 있다.

3) 이러한 산업 사회의 개혁은 어디까지나 가난한 자, 가지지 못한자, 고난당하는 자에 대한 “긍휼”이 그 기본 동기가 된 것이다. 그러므로 부익부 빈익빈을 항구화 하려는 음모는 인류의 미래 사회를 해치는 가장 큰 악이라는 것이다.

4) 끝으로 희년법이 말하는 교훈은 이 인간 역사 안에서 불가해한 신의 은총의 역사가 필연적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것과 신의 은총의 감격과 환희를 불러들이는 가장 강한 촉매는 “가지지 못한 자의 고난의 역사”라고 하는 것을 가르치는 것이다. 고난은 긍휼을 불러 온다. 긍휼이란 단어는 어원적으로 “레헴”(모태, 즉 자궁)을 말하는데 이것은 생명 탄생을 위한 고통 이후의 기쁨이 있듯이 희년(안식년)은 고난의 시기이지만 하나님이 긍휼이 넘치는 시기이다.

결어

인간 역사는 문자 그대로 희년(또는 안식년) 정신을 무시한 삶을 살아 왔다. 현대 자본주의 경제 사회에서는 이것은 웃음거리요 냉소거리 이상 아무것도 아니다. 그리하여 “땅”, 즉 우리 삶의 영원한 거점인 “땅”, 쉬지 않고 일하기만 하던 그 “땅”, 하나의 인격체와도 같은 그 “땅”은 마침내 노쇠하고 피곤하여 병들고 말았다.

종말론적 희망이며 신의 대 사면의 은총인 희년의 기쁨은 부익부 빈익빈의 고뇌를 인고(忍苦)해온 자에게 하나의 복음이다.



결론


희년사상의 현대적 적용을 하려고 하는 노력의 첫째 근거는 신학적인 것입니다. 예수를 구주로 믿고 구원을 얻은 모든 이들에게는 '그러면 이땅에서는 어떻게 살아야 하나?' 라는 질문이 있습니다. 이 질문에 대한 신학적 전거는 '이 땅도 하나님의 통치가 임하고 있는 하나님 나라이다' 라고 하는 것입니다. 희년사상은 이 물음에 대한 실천을 위한 고민의 한 대답으로 삼을 수 있는 규례이기 때문에 그 적용성의 의미가 있습니다. '예수천당'식의 복음 전도가 잘못되어서라기 보다는, 시대마다의 사명이 있고 그것을 표현하는 방식이 다르다고 한다면, 오늘의 믿는 우리들에게는, 말씀을 따라 살아간다고 하는 행함의 방법과 표현은 다른 것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되어지기 때문입니다. 믿음과 행함이 비율적인 균형이 아닌, 온전한 믿음은 온전한 행함으로 열매를 맺게되는 것이 말씀의 가르침이기 때문입니다.
희년사상의 현대적 적용의 둘째 근거는 희년법의 이른 기원에 대한 견해입니다. 희년법 기원에 대한 논의는 분분합니다. 아주 이른 연대기를 주장하는 쪽이 있는가 하면, 다른 한편은 바벨론 포수기 이후 제사장계열의 문서편집기에 첨가되고 신학화되어진 사상이라고 보는 편이 있습니다. 후자를 취하면 희년사상은 단순히 메시야 도래시에 이루어지게될 유토피아적인 해석을 하게 되어 본질적으로 인간이 이룰 수 없는 규례들이 되어지고 맙니다. 그러나 이에 못지 않게 희년사상의 이른 연대기를 주장하는 견해도 만만치 않고 더욱 설득력이 있습니다. 이 이른 연대기는 희년사상이 유토피아적인 것이 아닌 실제적인 사회적용을 위한 규례였음을 보여주는 견해입니다. 먼저는 레위기에 나오는 희년을 나타내는 '요벨'을 비롯한 4가지 중요한 단어들은 후기 성서에 관련된 문헌들에서 찾아보기가 어려운 단어들인 반면에, 고대 우가릿어 'mk'나 'samid adi dariti'에서 그 기원을 찾게 되어지는 것은 이 희년사상의 초기 발생설을 지원해주는 한 설명입니다. 그리고 고대근동에서 시행된 노예와 부채의 탕감에 대한 실제 사례들과의 여러면에서의 유사성은 초기 발생설을 주장하게 되는 또 다른 설명입니다. 이러한 초기 발생설은 희년규례가 단순히 유토피아를 지향한 실현할 수 없는 규례가 아니었으며, 고대 이스라엘 사회의 안정을 유지하기 위한 실제적인 실현을 위한 규례였음을 이야기 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고대 이스라엘의 사회정의를 위한 규례를 어떻게 오늘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에 적용하느냐는 그 당위성에 있어서는 정당합니다. 하지만, 각론적인 실천을 위해서는 여러면에서 우리가 처한 현실을 분석하고 적용해야 하는 우리모두의 노력과 지혜가 필요한 일입니다. 안식년과 희년법 규례는 오늘을 사는 우리들에게 그것이 의미하는 바를 따라 행함으로 옮기게 하는 것은 그 어느 길보다도 지극히 좁은 길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순종의 발을 내딛을 때 우리들에게 기쁨으로 그 길을 걸어갈 수 있도록 위로부터 부어주시는 은혜가 또한 있음을 말씀하시는 약속의 말씀을 믿으며 새 힘을 얻게 됩니다.
희년에 어떤 일이 일어났는가?

대천덕 신부(예수원 설립자, 성토모 초대회장)


제가 희년에 관하여 알고 있는 대부분의 역사적 정보는 편집자이자 저자인 ‘유진 폴 스티치’로부터 얻은 것으로 그의 저서 「역사와 조화 그리고 히브리 왕들」에 나옵니다. 제가 다닌 신학교에서는 이런 문제들을 전혀 다루지 않았습니다.

폴 스티치에 의하면 ‘희년에 관한 책’이 있는데 그것은 쿰란 부근의 팔레스타인 광야에서 살았던 엣세네인들에게는 매우 중요한 문서였다고 지적하고 있습니다(쿰란에서 그들의 문서가 최근에 많이 발견되었음). 거기에는 성경의 이야기가 모두 희년과 안식년이라는 연대를 따라 나옵니다. 엣세네 사람들 외에 사마리아 사람들도 지금까지 희년을 기념하고 있습니다.

성경에서 특별히 언급되고 있는 희년들이 더러 있는데 그 첫 번째는 출애굽 후 70년, 여호수아의 말년으로 B. C. 1401년입니다. 성경에서 희년을 매번 그와 같은 내용으로 언급하고 있지는 않지만 어떤 어떤 왕 치하, 제 몇 년에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기록되어 있어서 연대상으로 또는 토지 재분배나 그 외의 특징적인 사건으로 인하여 그때가 희년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폴 스티치는 “안식년이나 희년 모두가 이스라엘에서는 주기적인 종교행사로서 너무나 평범한 일이었기 때문에 히브리 성경 작가들이 그것을 특별히 기록하는 것이 불필요했다”고 말합니다. 그는 희년의 표시들로 ①토지 무르기 ②대표들의 모임 ③율법의 공식적인 낭독 ④계약 갱신 ⑤노예 해방 ⑥빚 지불 ⑦빚 탕감 ⑧토지 경작의 금지를 꼽고 있습니다. 뒤에 나오는 3가지는 안식년에 해당되는 것들이기도 합니다. 요르단을 가로질러 퍼져 있던 족속들이 추방된 이후로는, 토지가 더 이상 원래 맡겨진 자들의 손에 있지 않으므로 희년의 특징적인 성격들이 무효화 되었습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이 바빌론으로부터 돌아오자 다시 한번 토지가 주어지면서 희년이 적어도 요르단 서쪽에서는 의미 있게 되었습니다.

폴 스티치는 A. D. 70년, 즉 예루살렘이 함락되었을 때(이후로 이스라엘 국가는 거의 2000년 동안 사라지게 되었지만)가 희년이었음을 강조합니다. 이는 레위기 26장 33~35에 나오는 하나님의 말씀(그들이 모든 국가들로 흩어지리라고 경고하고 있는)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토지의 원래의 소유자이신 하나님께서 백성들이 도덕적으로 너무나 타락하여 속전을 지불하고 무르기를 시행할 수 없게 되자 그것을 도로 취하셔서 희년의 상태로 올리신 것”입니다. 예레미야 선지자를 통해 하나님께서는 여러 나라 가운데 흩으시겠다고 경고하면서 레위기에 나오는 메시지를 또 다시 반복하셨습니다. B. C. 519년 다리우스왕 2년에 70년 간의 억류 생활이 끝났을 때 하나님께서 원래의 경작자들에게 토지를 돌려 주신 것도 이 역시 희년이었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A.D.70년에 토지를 다시 취하시기 전에 12번1)의 희년이 있었습니다.

성경에서 희년에 관하여 특별히 언급되어진 것들을 열거해 봅니다. B. C. 1401년이 첫 번째 희년으로서 이 때는 여호수아가 토지의 최종 분배를 시행한 때입니다(수 23:1~8).

B. C. 960년은 성전 봉헌이 있은 다음 해입니다. 솔로몬이 히람왕에게 갈릴리 지방의 땅을 준 일로 인해 그 지역을 재분배하게 됩니다(왕상 9:10~13). 열왕기상 8장 1~2절에 대표들이 모인 것이 나옵니다.

B. C. 911년, 아사왕 15년에 대표가 소집되고 개혁이 단행된 것이 역대기하 15장 9~15절에 나옵니다.

B. C. 862년, 여호사밧왕의 마지막 해로서 수넴 여인이 자기 집과 땅을 돌려 줄 것을 요구하는 것이 열왕기하 8장 1~6에 나옵니다. 여호람은 이스라엘의 왕이었습니다.

B. C. 813년, 요아스왕이 죽은 해이자 아마시야왕의 통치가 시작된 해(역대기하 25장 5절)인데 인구조사가 합법적으로 행해졌던 유일한 희년이었습니다. 이와 같은 일이 역대기하 26장 11~13에도 기록되어 있습니다.

B. C. 715년, 히스기야왕 14년이 되는 해인데 그가 선포한 희년이 열왕기하 19장과 이사야 37장 양쪽에 나옵니다. 그가 희년을 지켰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그를 앗시리아에서 기적적으로 구출해 주셨습니다.

B. C. 519년은 다리우스 치하의 바빌론에서 돌아온 해입니다(다른 이들이 그 보다 앞서 돌아왔으나 많은 것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선지자 학개는 그때(희년)가 성경의 역사상 얼마나 중요한지 세 번이나 반복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역사적으로 기록된 것으로 구약에서는 마지막 희년인데, 여호수아 이후는 49×80이란 계산이 나오고 A. D. 70년에 있은 예루살렘의 함락 이전에 49×12란 계산이 나옵니다.

예루살렘의 함락 이후, 유대인들이 자기네 땅으로부터 쫓겨나 희년을 지킬 수 없었던 것이 자명합니다. 사마리아 사람들은 희년에 대한 기록을 간직하고 있습니다만, 제가 아는 한도 내에서는 재분배받을 땅이 없었습니다. 선지자들은 그리스도의 십자가 처형 이후 로마인들에게 무자비한 핍박을 받고, 그들만의 국가를 갖지 못해서 희년을 영적으로밖에는 기념할 길이 없었습니다. 그들은 특별한 해만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재산(땅과 집만이 아닌)을 재분배하는 코이노니아를 통해 희년을 실시하였습니다.

기독교가 공인되었을 때, 교회는 희년을 단지 코이노니아의 실행으로 받아들였을 뿐, 그대로 제도에 적용해야 한다고는 생각지 않았습니다. 물론 로마 황제들은 신자가 된 이후에 성경법을 로마제국을 다스리는 데 적용하려는 노력을 전혀 시도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신약시대 이후) 모든 성경의 법이 다른 것으로 대체되어 버렸다고 주장하는 신학자들을 옹호했습니다. 로마 제국이 마침내 붕괴되었을 때 희년의 문제가 다시 부상하게 된 것입니다. 봉건제도는 중앙 정부가 없는 유럽에서 채택된 것으로써, 약자와 가난한 자들에게 토지를 제공해 주고 야만인들의 공격을 차단하는 보호자 역할을 해 주는 방식이었습니다. 백성들은 그 대가로 영주들에게 농작물의 수확을 내놓았습니다. 시간이 흐르자 그 제도는 부패하게 되고 한 영주가 아닌 전 십자군을 유지하는 것이 짐이 되어 결국 봉건제도의 붕괴를 야기시킨 것입니다.

종교개혁은 몇몇 기독교 국가들에서 루터파, 캘빈파, 그리고 성공회와 같은 교파를 초래했습니다. 개혁자들은 경제적인 구조에 그 어떤 근본적인 변화를 가져다 줄 수 있는 정치적이고도 군사적인 힘을 갖추지 못했습니다. 발전해 나가는 과정에 있어서 결국은 상업과 산업 제도가 더욱 대단위화 되는 지주 제도, 즉 ‘자본주의’를 낳게 되었습니다. 이는 지나간 시절의 봉건제도에서 나타났던 불의를 단지 구조 변화만 가져 왔을 뿐, 이를 더욱 영속화시켰습니다. 이래서 많은 신자들이 이러한 제도에서 한 걸음 물러나 자원적인 차원에서 공의를 실현할 수 있는 하나의 방도로써 여러 형태의 공동체를 형성하게 되었습니다. 상태가 개혁되어야 한다고 너무 강조했던 사람들은 화형에 처해지고 그러한 운동은 진압되었습니다. 한편의 사람들은 그러한 상태를 내버려 두고 스스로 땅을 마련하여 단순한 가족 형태로 함께 살았습니다. ‘아미쉬’, ‘부르더 호프’ 같은 공동체들이 현대에까지 존속되었으며 20세기에도 그와 유사한 새로운 실험들이 계속 있었지만, 상태를 변화시킨 정치 세력은 아직껏 없고 다만 타이완에 있는 ‘국가주의자들(국민당)’과 싱가폴에 이와 유사한 자들이 있을 뿐입니다. 홍콩은 토지임대제도를 갖고 있으며 미국의 알라스카와 펜실베니아, 그 외 다른 지역에서 토지가치세를 적용하고 있는 사례가 꽤 있으나 이는 희년의 수정안 정도라고 할 수 있으나 아직 그 어떤 독립 국가적 차원에서의 실행은 이뤄지지 않고 있습니다.

<번역 : 공윤희(헵시바)>


Most of my historical information with regard to the jubilee comes from Eugene Faulstich, author/editor of the Chronology Books and is in his book "History, Harmony, and the Hebrew Kings." In the seminary which I attended the matter was completely ignored.

Faulstich points out that there is a "Book of Jubilees"which was a very important document for the Essenes, a group who lived in the Palestinian wilderness around Qumran, where many of their documents have recently been discovered. It is a retelling of the Biblical story, dating everything by Jubilees and Sabbatical years. Besides the Essenes, the Samaritans still celebrate the Jubilees.

There are several jubilees specifically referred to in the Bible, the first of which was 70 years after the Exodus, in Joshua's old age, in the year 1401 BC. The Bible does not refer to the jubilee years as such, but tells what happened in such-and-such a year of this or that king's reign and we can tell it was a jubilee by the date of because of a land redistribution or other characteristic event. Faulstich says, "The observance of both the Sabbath and the Jubilee were so commonplace in the cyclical phonemona of religious observation in Israel, that it was quite unnecessary for the writers of the Hebrew Bible to label the observation in any specific way." He goes on to describe the elements which can be observed as indicators of a jubilee year: 1)Land redemption, 2)an assembly gathered, 3)Law publicly read, 4)covenant renewed, 5)slaves emancipated, 6)payment of debts, 7)remission of debts, and 8)prohibition of land cultivation. The last 3 are also marks of a sabbatical year. After the deportation of the tribes of the trans-jordan, since the land was no longer occupied by its original trustees, the distinguishing feature of the jubilee was invalidated. However, the return from Babylon put the Jews back on the land and, once more, jubilees became meaningful, as least on the west side of Jordan.

Faulstich emphasizes that we know that AD 70, when Jerusalem was destroyed and the nation of Israel came to an end for almost 2000 years, was a jubilee year. It fulfills God's words in Lev.26.33-35, warning the people that they would be scattered through all the nations. "God, the original owner, took the land back on the Jubilee from a people too morally bankrupt to pay the redemption." Through Jeremiah the prophet, God also repeated the message of Leviticus, warning of the scattering among the nations. When the 70 years exile ended and the people returned in the 2nd year of Darius, 519 BC, this was also a jubilee year in which God returned the land to its original tenants. It occurred 12 jubilees before he took it back again in 70 AD.

Here are the jubilees about which something specific is mentioned in the Bible. 1401 BE was the first jubilee, when Joshua made the final redistribution of the land(Joshua 23.1-8).

960 BC, the year after the Dedication of the Temple. Solomon redistributed land in Galilee by giving some to Hiram(ⅠKings 9.10-13). ⅠKings 8.1-2 describes the assembly.

911 BC, the 15th year of Asa, we read of an assembly and a reform in ⅡChron. 15.9-15.

862 BC was the last year of Jehoshaphat and we read about the widow of Shunem claiming her land and her rents in ⅡKings 8.1-6. Jehoram was king of Israel.

813 BC at the death of Jehoash and the beginning of Amaziah's reign(ⅡChron 25.2). The only year in which it was legal to take a census was the year of jubilee. The same sort of thing is recorded in ⅡChron. 26.11-13.

715 BC was the 14th year of Hezekiah and his jubilee is described in both ⅡKings 19 and Isaiah 37. Because he kept the jubilee, God delivered him miraculously from the Assyrians.

519 BC was the year of the return from Babylon under Darius. (Others had returned, earlier, but had not accomplished much.) The date is emphasized by the prophet Haggai. He repeats it three times, showing its importance for Biblical history. This is the end of the historical record in the Old Testament, but a calculation of 49×80 shows the number of jubilees after Joshua and of 49×12 the number of jubilees before the destruction of Jerusalem in 70 AD.

It is obvious that the Jews could not keep the jubilees after the destruction of Jerusalem, when they were exiled from their land, until just 50 years ago. The Samaritans did keep a record of jubilees but, as far as I know, had no land to redistribute. The Christians, of course, were ruthlessly persecuted by the Romans from the time of Christ's crucifixion, and had no nation of their own and thus no way of celebrating the jubilee except spiritually. This they did by instituting the koinonia which was a continuous redistribution of wealth (not just land and houses) that did not require any particular year.

By the time the church became legal, the jubilee was just part of the Old Testament law that was fulfilled by the koinonia and there was no thought of applying it literally. The Roman emperors, of course, after they became Christian, made no effort to apply the Bible's laws to their management of the Empire. They encouraged those theologians who claimed that all the Biblical laws had been superseded. The question came up again when the Roman Empire finally collapsed. The feudal system which was adopted in Europe, where there was no central government, was a way of protecting the weak and poor by providing them with land and with a protector to fight off the barbarians. The people repaid their protectors by sharing their crops with them. As time went on the system became corrupt and the burden of supporting not just a protector but a whole army of crusaders finally caused the collapse of the feudal system.

The reformation brought abut the organization of several Christian nations--Lutheran, Calvinistic, and Anglican--but the reformers lacked the political and military power to bring about any basic change in the economic structure. The process of development finally resulted in a landlord system with an increasingly complex commercial and industrial system which became known as capitalism. It perpetuated the injustices of the late feudal system, merely changing the structural forms. This is when many Christians withdrew from the system and formed various kinds of intentional communities in an effort to bring about a measure of justice on a voluntary basis. Those who insisted too strongly that the state should be reformed were burned at the stake and their movements were wiped out. Others left the state alone and found land for themselves and lived together as a single family. Many of these, such as the Amish and the Bruderhof, have survived to modern times. In the 20th Century there was been a new series o such experiments, but the movement has not had the political power to change the state other than the Nationalists in Taiwan and their imitators in Singapore. Hong Kong has land lease and there are a number of applications of the land value tax, which is a modification of the jubilee law, in Alaska, Pennsylvania, and other locations, but not in any independent nation.


lovetanzan
 ::: 귀한글 감사합니다. 선교는 단순한 전도만이 아니라 민족의 운명을 복음으로 바꿀 그릇을 만드는 작업이 필요합니다. 우리가 허공에서 살수없듯 땅은 하나님이 주신 기업입니다.  

성도
 ::: 아프리카 역사에, 땅에 대한 기독교인들의 잘못으로 기독교국가들이 이슬람화된 적이 있습니다... 역사적으로 그리고 현실적(영적)으로 땅의 문제는 중요합니다..(땅의)정의가 임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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